본문 바로가기

군대

세계 2차대전 동부전선 전투의 영웅

반응형

안녕하세요. 2차대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바로 아돌프 히틀러 입니다. 세계 정복의 검은 야욕을 가지고 시작한 2차 대전은 전세계에 많은 나라에 피해를 안겨 주었으며 또 유럽에 엄청난 사상자 및 유태인을 학살하였습니다. 또 독일인 2차대전을 벌인 계기로 미국에 대적할 만한 무기들을 생산할 기틀을 마련 하게 되었습니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 2차대전 당시 가장 치열했던 전투지역은 바로 동부 전선 입니다. 동부전선의 승리로 나치는 전쟁을 계속 오래 지속 시켰다고도 볼 수 있는데요. 연합군 역시 동부 전선 전투의 승리를 바탕으로 전쟁에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고 볼 수 있을만큼 전략적 요충지라 볼 수 있는데요. 동부 전선에서 활약한 인물들은 어떤 사람이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하인츠 구데리안

 

진격의 아버지로 많이 알려진 하인츠 구데리안은 히틀러의 신임을 한몸에 받는 인물로써 육군참모총장 자리까지 올라간 인물 입니다. 


에리히 폰 만슈타인과의 친분이 두터웠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전쟁초기에는 폴란드 침공의 선봉에 서서 전쟁에 참여 하였으며 독일 소련간의 전쟁에서도 뛰어난 공을 세웠습니다. 


하인츠 구데리안하면 기갑부대를 기본으로 실전에서 승리를 하였으며 또 전자의 생산에도 직접 참여하여 전선에 필요한 부분까지 개선하며 최적의 전차를 만든 인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모스크바 공략 실패에 사량관 해임이 되게 되지만 작전의 실패 보다는 히틀러에게 반항했다는 이유가 해임이 되게된 직접적인 이유 입니다.


하지만 1943년 대시 전선에 불러들여지게 되며 히틀러 임살미수 사건에서 부상을 당한 쿨트 자인츠러에 뒤를 이어 육군 참모 총장이 되게 됩니다. 


당시 육군참모 총장이자 자신에게 가까웠던 폰 만슈타인을 대신에 육참총장이 되게 되었죠. 당시 종전 후 연합군에 체포가 되게 되지만 증거 불충분 및 다양한 이유로 무죄 석방이 되게 됩니다. 


발터 모델

 


히틀러의 소방수라 알려져 있는 발터 모델은 연합군과 맞서서 동부전선 방어에 엄청난 성과를 올렸습니다. 1차대전에 보병 장교로 참전한 발터 모델은 2차대전이 시작된 폴란드 침공의 선봉이였으며 또 독일 소련간의 전쟁에서 소련에게 포위 당하자 그의 명언인 "독일의 원수는 항복하지 않는다" 라는 말을 한 후 자살을 선택하게 됩니다.


발터 모델은 독일의 9군 참모장 16군 참모장 3 기갑 사단장 41 군단장 2군 사령관등 군의 주요 직책을 맡았으며 남부집단군 사령관을 역임하기도 한 히틀러의 충신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히틀러가 전선에서 고전을 하고 있을때마다 독일군에게 유리하게 전쟁의 판세를 뒤집어 놓아 히틀러의 소방수라는 별명이 생기게 되었는데요. 히틀러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충신중 하나 였습니다. 

 

에리히 폰 만슈타인

 


기동전의 선구라자 불리우는 폰 만슈타인은 전쟁초기 히틀러의 총애를 받아 독일군 육군 참모총장으로 거론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브로베이크 프리취 사건에 연루가 된 후 독일 나치는 육군에 더 많은 중책을 맡기면서부터 좌천되기 시작 하였습니다.


당시 국방부 장관 이였던 베르너 폰 브롬베이크와 육군 사령관인 베르너 폰 프리취를 밀어내기 위해서 나치당이 괴링과 함께 모함을 하게 되며 루드비히의 수족이였던 만슈인도 변방인 동부전선으로 좌천되게 됩니다. 

 

하지만 동부전선으로 촤전되기 직전 히틀러에게 제안했던 낫질 작전을 히틀러 본인이 직접 듣게 되면서 둘간의 신뢰가 쌓이게 됩니다. 그 후 사령관으로 임명이 되게 되며 프랑스의 침공에 공을 세우게 되며 독소 전재에서 세바스토폴투전투 바로사작전, 6군 구출 작전에 성공하는 성과를 거두게 됩니다. 


하지만 히틀러와 쿠르스크전투에서 언쟁을 펼치게 되며 나치군의 남부 후퇴의 책임를 뭍게 되며 사령관에서 해임이 되게 된 후 발터 모델이 사령관으로 임명되게 됩니다. 후선으로 물러나게 된 후 히틀러는 자살을 하게 되고 대통령이 된 되니츠는 다시 폰 만슈타인을 중용하려 하였으나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종전 후 전범 재판에서 18년형을 선고 받게 됩니다. 하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4년후 출소하게 되며 1973년 병으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지금도 미 육군사관학교와 영국의 육군 사관학교에서는 전술의 교본으로 쓰일 정도로 동부 전선을 이끌었던 인물들의 작전은 휼륭 했다고 합니다. 독일군의 치명적인 단점은 지휘관이 아닌 병사들 이였다고 말 할 정도로 지휘관들의 능력은 대단했다고 합니다.